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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381, Date : 2019년 5월 7일 오전 11시 50분 51초
  제목 [기고] 대통령이 상담받는 나라 (권수영 교수) 
  글쓴이 관리자 (yccc@yonsei.ac.kr)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032042005&code=990100
(위 주소를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시면 기사원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고] 대통령이 상담받는 나라 (권수영 교수)  

  가정의달 5월이 오면, 나는 지금은 곁에 없는 특별한 내 가족을 떠올린다. 운명처럼 같은 날 태어나신 내 선친과 장인어른의 생신이 5월23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20여년 전 돌아가신 두 분 생각이 5월이면 더욱 절절해진다. 10년 전 5월23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아침부터 두 아버지 생각에 잠긴 채 출근하던 중, 나는 차량 라디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다. 퇴임 후 보통사람으로 돌아가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격의 없이 막걸리 마시기를 원했던 전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나의 5월23일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몇 해 전 5월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가족과 함께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관람했다. 영화는 내내 노무현 16대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함께 겪어온 인간적인 이야기를 풀어갔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낙선을 거듭해온 비주류 정치인의 오뚝이 같은 대역전극을 보여주려는 의도로구나 싶은데, 그런 예상은 금세 빗나가고 만다. 영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적지 않은 관객은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왜일까? 불의를 향한 정의감에 불타는 인권변호사 출신, 강직한 대통령의 부릅뜬 눈에 넌지시 내비치는 슬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를 허탈하게 떠나보낸 측근들도 내내 애써 웃어가며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태연하게 소개했지만, 순간순간 진한 상실과 회한의 아픔이 묻어나왔다. 최측근 정치인 중 한 명은 역사 속의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할 뿐, 평소에는 애써 ‘인간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나는 그에게 꼭 얘기해주고 싶었다. 누군가와는 은밀하게 만나서 ‘인간 노무현’에 대해 실컷 이야기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잘 훈련받은 상담 전문가를 찾아가서라도 꼭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영화의 인터뷰 중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 중학생 노무현이 학비를 내지 못해 담임교사에게 뺨을 맞고 학업을 중단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전한 측근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가 어린 노무현을 안아주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화 내내 대통령 노무현의 모습 속에서 뺨을 맞고 돌아서는 ‘중학생 노무현’이 보였다. 그는 청와대에서 귀빈을 만날 때, 좋아하는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마셨다고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늘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술에 취해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란다. 청와대의 참모마저도 대통령이 실은 애주가라는 사실을 퇴임 이후에나 알았다고 했다. 그에게 청와대는 어쩌면 외로운 전쟁터였는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난 후 나는 상담 전문가가 청와대에서 그 외로운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마음속 얘기를 충분히 경청하고 공감해줄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에 잠겼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즈음에 나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 ‘전문상담진흥법’의 국민청원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1940년대 북미에서 시작한 상담(counseling) 운동은 애초부터 진단받은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의학과의 심리치료 행위와 구별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욕구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담 서비스에서는 수동적인 ‘환자’라는 단어를 주체적인 ‘고객’으로 바꿔 불렀다. 이런 상담사의 접근은 누구나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 또한 전문 상담사가 되려면 자신부터 상담을 받고 내면을 돌보는 일이 필수적이다. 어쩌면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들도 숨겨진 자신의 내면 상처를 보듬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국민을 더 잘 섬기고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틈만 나면 불러대던 노래가 있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피맺힌 그 기다림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상담 전문가를 때때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기 이전에, 내면의 상실과 슬픔을 안고 살아온 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상담받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면, 모든 고위공직자와 공무원, 그리고 교사들도 필요할 때면 상담을 받아, 온 국민과 학생들이 존중받고 안전감을 누리는 그날이 속히 오지 않을까? 국회의원들이 때때로 상담을 받고 자기 자신을 먼저 살피는 그날이 오면, 국민들이 자신의 안방에서 고성과 막말이 난무하는 ‘식물국회’와 ‘동물국회’를 번갈아 바라보며 탄식하는 일도 그치지 않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그날이 오면’ 노래가 부르고 싶어진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상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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